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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봄 학기를 마친후 벌써 한 해의 중간에 다가가는 가운데 여름방학중 영육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지금 제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이끌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일들을 되돌아보며 나누어보기 원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깊은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정말 순수한 아이의 생각과 마음으로 부모님 손잡고 교회를 다닐때라 그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교회는 그저 때되면 가는곳 정도로 느끼고 하나님은 보이지는 않으시지만 계시는 분 정도로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저 주일학교와 초등부 예배를 드리며 성경 이야기들과 인물들과 친숙해지는 정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중 2006년 당시 중학생인 저는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 이곳 롱아일랜드에 이민을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 살던 저에게 이곳 뉴욕에서 겪은 금전적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 또 언어의 장벽은 사춘기때 육체적과 정신적으로 변화하고 있을때에 제게 외로움과 답답함들로 돌아왔었고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가볍게 웃고 그땐 그런일도 있엇지 하며 떠올릴 수 있는 자잘한 실수들과 헤프닝들 하나하나가 아직 덜 성숙했던 저에겐 큰 상처로 돌아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던중 제가 유일하게 의지 할 수 있엇던 것은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 공동체 였습니다. 그곳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통했던 또래들과 교제하고 여러 교회 어른들의 케어를 받을 수 있던게 제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 이당시에 저의 개인적 신앙의 영성을 쌓는 첫 걸음을 뗀 때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여섯명 밖에 되지 않았던 그 교회 유스그룹을 누구보다도 사랑과 열정 으로 섬겨주신 전도사님을 통해 성경을 그저 이야기책으로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 진리로 받아드리게 되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당시 전도사님께서 해주신 탕자의 이야기에 대한 설교 그리고 시편 1편에 대한 설교 가운데 깨닫고 느낀 하나님의 영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감동이였음을 생각해 봅니다. 또 그때당시 처음 배운 기타는 제가 집에 혼자 있을때 둘도 없는 제 친구가 되어 지친 제 마음을 찬양으로 위로 해주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몇년 되지 않아 저희 가족은 조금 더 규모가 큰 한인교회를 옮기게 되고 그때 새로 가게된 새로운 유스그룹 공동체에서 전 많은 상처를 받으며 힘든 생활을 보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그 교회의 장년 예배를 드리신 후 아주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 하기에 좋은 교회다 싶어 이 공동체에 나가게 되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교회 학생부는 바른신앙과는 거리가 먼 공동체였음을 기억해 봅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그저 놀러, 혹은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나오고 있었고 교역자와 선생님들은 그저 통제안되는 학생들 케어하기에 항상 바빴었습니다. 이제는 미국생활에 적응도 해 나갈 즈음, 상황이 역전되어 매주 교회에서 상처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게됨이 제겐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제 영성은 침체기를 맞게 되고 부모님과 깊은 대화 후 저는 혼자 그 교회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지금 되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신기한 일이였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직 제게 차도 없을때에 저 혼자 다른교회를 다니려 한다는 것은 롸이드를 오롯이 제 혼자의 힘으로 찾아서 다녀야 한다는 것이였는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고 절박했는지 그런것은 전혀 걱정거리 조차 되지 않았엇나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여러 귀한 인연을 허락해 주셔서 그 후에 때에 따라 여러 공동체를 허락해 주심 덕분에 나름 회복되가는 신앙생활을 하던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곳 스토니브룩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당시 신분상의 문제로 생각치도 못하게 학기등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식집에서 풀타임으로 서빙을 시작했습니다. 집 학교 교회 밖에 모르고 살던 저에게 주 5-6일 하루 12-13 시간을 나가 일하며 조금이나마 맛본 사회생활과 새로운 경험들은 인생에 대한 저의 시야를 무엇보다도 넓혀 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온전히 제 힘으로 얻은 소득을 가지고 처음으로 헌금을하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게됨이 너무나도 큰 기쁨이 되었고 십일조와 온전한 헌금생활 하는것이 그저 아까운 일이 아니고 제 모든것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임을 인정하면 인정 할 수록 일터에서 저를 지켜주시며 더욱 귀히 써주심을 느낄 수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한 나날이였습니다. 서빙의 특성상 팁을 받는 일이여서 얻는 소득이 천차만별 일 수 있는데 제가 일하는 날이면 장사가 더 잘되는등 신기하고도 오묘한 방법으로 제가 마음으로 드린 헌금들과 십일조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제게 채워주심을 몸으로 느낄 정도로 그당시 갓 고등학교 졸업한 아무것도 아닌 제 기준에서는 상당한 돈을 벌었었고 허리케인 샌디가 왔을때는 집에 전기가 2주동안이나 나가서 집에오면 오들오들 떨며 잠도 제데로 못 잘 때도 있었는데 그럴때도 제 몸에 필요한 말도안되는 체력과 힘을 허락하셔서 2주내내 주 6일을 일하는등 요셉과 함께 하셧던 신실하신 하나님의 영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2013년 봄학기에 제 유학생 비자가 나오고 드디어 스토니브룩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제적 여건이 넉넉치 않아 기차로 힉스빌에서 통학을 하였는데 집에서 힉스빌역까지 운전, 기차타고 헌팅턴 까지 가고, 헌팅턴 역에서 환승후 스토니브룩 까지 기차타고, 스토니브룩 역에서 캠퍼스까지 걸어가기 또 집에오는동안 다시 한번 더 반복 해서 하루에 3-4 시간정도를 그냥 길에서 보냈었습니다. 학교에 freshman 을 위한 많은 resource 들이 있었음에도 그저 하루하루 통학하기도 벅찼던 당시의 저에겐 그런 것을 사용하는것 자체가 사치 라고 느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런 것들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때 더욱 활용했엇어야 했음을 깨닫고 그때당시의 행동들이 많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는사람이라곤 고작 orientation 때 잠깐 만났던 외대 편입생들 몇과 인도인 물리 lab partner 가 전부였고 교내 클럽활동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땐 다시 학교에 오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였는지요. 

 

그러던중 2013년 가을학기 시작 즘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저희가족 영주권 진행이 거의 다 되었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이제 한국으로가서 미국 대사관에서 간단한 인터뷰만 보면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학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먼저 영주권을 얻으려는 마음에 1 주일정도 수업을 빠질 각오를 하고 7-8년 만에 가족모두가 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차상의 문제로 영주권 진행이 무기한 연기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온 저희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상황이였습니다. 당장에 저와 제 동생 학교 문제부터 최악의 상황에는 미국에 아예 못 돌아올 수 도 있는 상황이였는데 한국에서는 지낼 곳도 딱히 없어 친척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신세지내며 지내게 되는등의 상황들은 이민생활의 고충 가운데 겪을만한 일들 다 겪어봤고 누구보다도 역경에 단련되있었다고 자부했던 저희 가족 모두를 한없이 무너뜨렸습니다. 미국생활을 하는동안 한국에서의 기반을 모두 잃어버린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 할 수도 없었고 아버지의 건강상의 문제도 그때 겹처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어디가 바닥일지 실감이 되지 않을정도로 계속 상황은 악화만 되갔습니다. 걱정이 걱정을 낳고 그것들이 결국 몸을 잠식해 가는 느낌이였고 하나님께는 한없이 원망만 쏟아놓고 이런게 하나님의 사랑이냐고 고작 이제와서 이모양 이꼴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온 것이냐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마침 절 안타깝게 보던 친척누나가 그래도 이렇게 된거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것보다 오랬만에 한국에 왔는데 여행을 다녀보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평소 같았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을 부모님도 안타까운 상황가운데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여행중에 참으로 오묘한 이끄심 가운데 성산일출봉으로 유명한 제주도 성산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텝으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을 하게 되고 1주일 뿐일 꺼란 여행은 결국 2 달이 되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전국 각지 심지어는 해외에서 온 다양한 분들과 즐겁게 교제하고 매일 한국에서 제일가는 일출봉 앞에서의 일출을 만끽하며 지낸 말그대로 땅끝에서의 날들은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누구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인생의 휴가가 되었고. 다시 돌아와서도 귀한 교회공동체 가운데 생활하며 고난 가운데 가족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기도 또 고민 끝에 어떻게 해서든 다시 미국에 돌아와야 겠다는 생각에 저희가족은 진행하던 모든것을 포기하고 다시 각자 비자를 발급받아 오기로 하는데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모두 새로운 비자를 잘 받게 되어 미국에 돌아와 아직까지도 다 힉스빌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아버지도 몸 수술을 잘 받으셔서 지금까지 잘 몸관리 하고 계십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스토니브룩에 다시 복학하고 또 1년을 조용히 통학하며 지내던 중 하나님께서 제게 Resident Assistant 를 지원해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통학만 해보고 캠퍼스 생활을 한번도 안 해본 저는 on campus 생활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유학생 신분인 것도 감안하면 미국인 아이들도 치열하게 경쟁을 치른 후 될 수 있는 RA 란 직업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제가 얻을 수 있는게 아니였습니다. 실제로도 application process 를 망치게된 저는 제가 RA 가 될 것이라는걸 전혀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짜피 안될것이라는 확신이 얼마나 컸는지 일부러 주위사람들에게 기도제목을 나누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마 중보기도 해주셨는데도 안되면 해주신 분들에게 낙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 RA 가 되었고 남은 2년의 대학생활을 캠퍼스에서 살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놀랍고 기쁜 나머지 처음 email 통보를 받았을때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5분 넘게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기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fall 2014년 학기 전 2주 동안의 RA 교육을 받게되는 중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게되고 또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게된 사실은 것은 스토니브룩 학교가 LGBTQ 와 그외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제가 속한 campus residence 부터 많은 department 가 여러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였습니다. training 중 눈에 띄게 큰 부분이 student leader, 혹은 role model student 라고도 여겨지는 200여명의 RA 들에게 LGBTQ 에 대한 학교의 vision 을 가르치는 곳에 할애되었고 저의 신앙과 정면으로 부딛히는 죄에 대한 부분을 정당화시키는 교육을 받으면서 전 2주간 너무나도 많이 지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제가 깨달은 것은 제가 저의 힘으로 RA 가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저로 편하게 즐기며 남은 학교생활을 하라고 RA 란 것을 허락해주신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제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중보자로서 죄가운데 빠지고 있는 Stony Brook 과 campus residence 를 위해 또 제가 살게된 Stimson College 를 위해 기도하라고 보냄 받은 것입니다. 그러고 그 깨달음 가운데 다시 지친 영과 육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RA 로 2 학기를 보내고 정말 통학할때 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며 많은 일들을 매일 겪으며 지냈습니다. 출석하게된 나눔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새벽기도, 금요찬양예배, 주일 본예배, 캠퍼스찬양예배, 조모임, 조장모임, 그외 형제자매들끼리 개인적인 QT 모임과 교제 가운데서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귀한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장년분들과 대학원생 분들과도 같은 공동체에 있을수 있다는게 너무나도 큰 감사입니다. 학업적으로 바쁠 수 밖에 없는 3 학년 1년동안 학업 외 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다 헤아려 보자면 이 모든 일들이 그 짧은 시간안에 다 있었다는게 정말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끔씩 제가 지나온 신앙생활의 여정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고 인도해 주신 인생의 귀한 경험들, 고통과 상처들,또 회복할 힘들을 돌아보면 이 모든게 제게 임한 주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삶의 고난가운데 여러 부분을 회복해 주셨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절 힘들게 하는 마치 바울에게 육신의 병과 같은 흠과 약점들이 제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것들로 인해 절 더욱 기도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보고 느끼며 그마저도 감사함으로 여기게 하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심 또한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것 뿐만 아니라 날 사랑하시기에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지금의 모습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을 알게하셨습니다. 모든 것들 이미 이기신 여호와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 없이 그저 그분을 바라보며 신앙의 여정을 이어나가겠다는 마음과 앞으로의 이땅에서의 허락해주실 미래에 대한 기대, 또 하늘나라의 소망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인생의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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